음악의 재발견: 뉴욕에서 피어난 자유로운 선율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4)*은 존 카니 감독이 연출한 음악 로맨스 드라마다. 존 카니 감독은 *원스(Once, 2007)*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음악과 영화의 조화를 아름답게 완성해냈다. 비긴 어게인은 뉴욕을 배경으로, 음악 프로듀서 (마크 러팔로 분)과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우연히 만나면서 서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초반부터 한물간 프로듀서와 실연의 상처를 안은 아티스트가 마주치는 장면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음악적 파트너십을 맺게 되는 인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영화 속 도시 뉴욕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주인공들의 감정과 음악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돕는 거대한 캔버스로 묘사된다. 거리와 지하철, 옥상과 공원 등 평범한 공간에서 라이브 레코딩이 이루어지는 콘셉트는, 이미 원스에서 보여준 ‘거리 공연’의 연장선상이면서도 훨씬 더 대담하고 다채롭다. 관객들은 “음악은 녹음실뿐 아니라 어디서든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촬영 현장이 된 뉴욕의 풍경과 소리마저도 영화의 한 요소로 흡수된다는 점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특히 이 영화를 통해 키이라 나이틀리가 선보이는 노래와 기타 연주는, 그녀의 이미지를 ‘배우’에서 ‘뮤지션’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전문 가수만큼의 탄탄한 기교는 아니지만, 캐릭터가 지닌 감정—조금은 불안하면서도 솔직하고, 여리고도 결연한—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에 그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 음악 프로듀서 댄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 역시 한때는 능력이 뛰어났으나, 업계에서 소외된 인물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그가 처음 그레타의 무대를 보고 “이건 성공시킬 수 있다”고 직감하며,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반주와 편곡이 떠오르는 시퀀스는 관객들로 하여금 “음악이 곧 마법처럼 펼쳐지는” 순간을 체감하게 만든다.
부서진 꿈과 관계, 그리고 희망의 재구성
비긴 어게인이 단순한 음악 영화로만 소비되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들의 드라마가 음악을 매개로 깊이 있는 변화와 회복을 이룬다는 점에 있다. 댄은 가정이 붕괴되고 직장에서도 해고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거의 잃다시피 했다. 그레타 역시 가수로 성공하기보다는, ‘함께 음악을 만들던 남자친구(애덤 리바인 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 갑작스런 배신과 이별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처럼 “한때는 꿈과 사랑이 충만했지만, 어느새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두 사람이 음악이라는 다리를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모습은, 영화 전반에 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레타와 남자친구 데이브의 에피소드는 특히 인상적이다. 데이브(애덤 리바인 분)는 음악적 성공을 위해 과감하게 상업적 선택을 하며, 그 과정에서 그레타가 추구하던 ‘진짜 음악’과 멀어져 버린다. 이를 계기로, 그레타는 “내가 음악을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되며, 댄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게 된다. 이런 과정은 비단 음악 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릴 때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동시에, 댄이 가족과 갈등을 겪어온 원인에는 무관심과 소통의 부재가 깔려 있다. 그러나 뉴욕의 길거리에서 진행되는 녹음 프로젝트가 점차 완성되어 가면서, 그의 마음속 깊숙이 잠들어 있던 애정과 책임감이 깨어난다. 댄과 그레타가 서로의 상처와 결핍을 공감하고, 음악을 통해 그것을 채워 나가는 서사는—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가는 일종의 ‘구원의 여정’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한 번 무너진 관계와 삶도, 진정성 있게 대면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전달한다.
도시의 심장 소리를 담은 OST와 자유로운 연출
영화 OST는 비긴 어게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감독 존 카니는 과거 음악 밴드 활동 경험을 살려, 직접 노래가 연출에 녹아들도록 시나리오를 구성했고, 작중 곡들은 캐릭터의 심정과 스토리 전개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예컨대, 키이라 나이틀리가 부르는 〈Like A Fool〉이나 〈Lost Stars〉는 그녀가 처한 감정적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특히 〈Lost Stars〉는 애덤 리바인 버전과 키이라 나이틀리 버전이 각각 존재해, “같은 곡이어도 누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레코딩 스튜디오를 벗어나, 뉴욕 곳곳을 스튜디오 삼아 노래를 녹음한다”는 발상은, 도시 자체가 ‘소리의 무대’임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경찰차 사이렌이나 지하철 소리 등 도심의 소음조차도 음악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오래된 건물 옥상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 반주가 한밤중 공중에 번져나가는 장면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독특한 감흥을 준다. 이처럼 OST와 뉴욕이라는 공간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도시의 심장소리’는, 영화에 역동적이며 동시에 아늑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연출 방식 역시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와 간결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편집으로, “음악을 통해 현재를 즐기는 삶”을 닮아 있다. 정형화된 서사나 멜로 클리셰에서 벗어나, 사랑과 꿈,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존 카니의 스타일은, ‘음악 로맨스’라는 장르가 주는 선입견을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공감과 몰입을 제공한다. 또한 결말부에서 보여주는 ‘독립 음반 발매’에 대한 시선도, “음악의 진정한 가치는 시장 논리보다 아티스트의 진심에 있다”는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며 영화의 의미를 더한다.
총평: 다시 시작하는 용기, 그리고 음악이 전하는 위로
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은 “음악이 있는 곳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테마를 경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각각 다른 이유로 삶이 엉켜버린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뉴욕 거리 곳곳을 누비며 자유로운 음반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바로 “음악이 줄 수 있는 치유와 소통의 힘”을 생생히 보여준다. 인물들이 부딪히고 화해하며 마침내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여정은, “우리 또한 아무리 밑바닥을 경험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OST 곡들이 귓가를 맴도는 것은, 단지 선율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내고, 당신만의 노래를 부를 가치가 있다”는 굳은 믿음이 담겨 있다. 이는 상업성과 트렌드에 지친 현대인이 간절히 원하는 ‘진정성’을 음악을 통해 구현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뉴욕의 밤거리, 옥상, 지하철, 그리고 수많은 골목길에서 울려 퍼지는 생생한 연주와 보컬들은, 멜로영화가 주는 달콤함을 넘어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깊고 지속적으로 울린다.
결국, 비긴 어게인은 “실패가 끝이 아니다”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음악으로 변주해낸 작품이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이 노래와 연주로 서로에게 다가서고,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재정의한다. 이들의 여정은 관객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진정성을 잃었다면,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보라”는 작은 울림을 선물한다.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인생 또한 완전히 다른 멜로디로 ‘비긴 어게인(Begin Again)’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